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by rus in urbe

오늘도 워드프로세서를 실행하고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한다. 가만히 들여다봐도 좀처럼 글감이나 콘셉트가 떠오르지 않는다. 딱 그만큼을 더 들여다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한 문장만 또렷이 떠오른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결코 쉬울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예상보다도 벅차고 어려운 일이다. 하루 종일 글 쓸 궁리를 하고, 글을 쓰려고 새로운 경험을 시도해보고, 글이 완결되기 전에 잠들지 않으려고 해도, 글이 술술 써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글쓰기가 삶을 잠식해가며, 글쓰기가 나에게 봉사하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내가 살고 있는 기분마저 들고 있다. 어느 샌가 나는 칸트의 정언명령마냥 글쓰기를 목적 자체로 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절망의 바닥을 또 한 편의 글로 토해내는 현재의 내 모습이 그 완벽한 증거다.

- 매일 글을 쓰는 일이 쉽지 않은 이유.

첫째로 매일 영감을 얻기가 쉽지 않다. 글을 촉발시키는 영감엔 여러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상의 영감은 글의 소재가 되고, 경우에 따라 제재가 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은 글로 변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유형은 글의 콘셉트를 떠올리게끔 하는 영감이다. 지난 5일간 서평, 문화비평, TV비평을 넘어 단편소설까지 다양한 형식을 추구한 까닭이 여기 있다. 특정한 형식이 떠오르면 내용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베스트는 아침이나 전날 밤에 다음에 쓸 글의 형식이 떠오른 경우다. 그럼 하루를 지내며 그 형식에 써먹을 글감만 모아두고 조용한 밤이 찾아왔을 때 이를 문장으로 풀어내면 된다. 간혹 이 순서가 뒤바뀌는 경우도 있다. 개연성 없이 흩어져있는 글감들이 나중에 떠오른 형식으로 꿰어지는 경우도 있고 하나의 글감이 신선한 형식에 담겨 좀 더 재밌는 작업이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형식에 대한 영감이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실 매일 똑같은 패턴의 삶을 살더라도 생각은 매번 다르기에, 형식의 신선함만 보장된다면 매일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을 게다.

둘째,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폭이 그리 넓지 않다. 첫째 이유가 형식과 관련된 것이라면, 둘째 이유는 형식을 채우는 솜씨에 관한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스타일의 건물을 지을 것인가의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건물을 쌓는 기술 자체가 부족해 허술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얘기다. 사실 매일 글 쓸 일이 없다면 이런 곤란에 빠질 일도 없다. 가끔씩 자신이 가진 기술을 이용해 필요에 따라 글을 쌓아올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매일 반복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즐겨 쓰는 어휘와 표현이 별 다른 고민 없이 튀어나올 때의 당혹감, 새로운 문장을 써보려는 시도가 좌절될 때의 막막함 등은 아무 때나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언어의 폭이라는 건 영감의 문제와는 달라서 꾸준한 노력으로 천천히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진리는 내 언어가 주는 식상함과 더불어 내게 이중의 좌절을 안겨주고, 이렇게 지저분한 하나의 문장을 쓰는 데에도 한참을 고뇌하게끔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글을 쓰는 걸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먼저, 영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삶을 풍성하게 한다. 다양한 형식의 글을 쓰기 위해선 다양한 형식의 글을 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매일 글을 쓰기 위해 다독은 필수조건이 된다. 뻔한 얘기지만 일상에서 색다른 사유를 끌어내려는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의 한계에 매일 다다르는 일은 그 한계를 확장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경험에 우호적으로 변한다. 이게 언제나 좋은 일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분명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로써 글쓰기 영감을 얻기 위해 삶을 사는 것이 내게 일정한 유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다음으로 매일의 글쓰기를 통해 언어의 지평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정교하게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언어의 지평은 끊임없는 노력으로밖에 넓혀지지 않는다고 앞서 지적한 바 있다. 끊임없는 노력이라 함은 새 어휘나 통사구조를 원래 제 것처럼 활용할 정도로 연습하는 일일 테다. 이 연습의 반복을 통해 언어의 지평은 조금씩 확장된다. 이와 동시에 언어의 활용 정도도 정교해질 수 있다. 언어의 확장만큼이나 이미 갖고 있는 언어를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매일의 글쓰기라는 시행착오의 장()은 보다 적확한 표현들을 찾아내는 과정에 가장 적합한 일이다. 생각과 정서가 보다 정교하게 언어화된다는 말은 그만큼 타인에게 덜 오해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덜 오해받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김혜리 기자의 트윗을 통해 생각해보면 좋겠다.

결국 최후의 순간에 중요한 건 내게 반한 사람, 날 좋아하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내 편 들어줄 사람이 아니다. 어떤 노이즈가 껴도, 흉하고 징그러운 부분을 포함해 나를 오해하지 않을 사람들이 중요하다. 그들이야말로 나를 계속 제대로 살게 한다. '적어도' 오해하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 희귀하고 소중한 일이라고 통감한다. 사랑과 행복보다 더.

그렇다. ‘적어도오해받지 않기 위해, 그래서 계속 제대로 살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고행은 의미가 있다. 어떻게든 눌러 앉아 글을 한 편씩 쥐어짜내는 노력은, 소박한 듯 거창한 내 인생관 잘 살자에 그렇게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를 이렇게 실천했다. 그리고 아마 내일도 난 어떻게든 워드프로세서를 실행하고 깜빡이는 커서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덧글

  • ㄱㄱㅇ 2012/11/17 23:14 # 삭제 답글

    여기 견님 티스토리군요!! 반갑습니다!
    엮인글 링크 걸어주셔서 알게되었네요. ㅎㅎㅎ

    글 쓰는 건 너무 힘들어요...................
  • rus in urbe 2012/11/18 00:37 #

    티스토리 아니고 이글루스입니다. ㄱㄱㅇ님. 종종 놀러오시길...ㅋ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