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제왕> 리뷰 - 드라마에 대한 드라마 by rus in urbe

생방이나 다름없는 드라마 제작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수법은 이미 <그들이 사는 세상>(이하 그사세)에서 익히 보아온 것이다. 쪽대본에 따라 급하게 찍은 테이프는 퀵서비스로 이송된다. 차이가 있다면 사고로 인해 퀵서비스에 이어 테이프를 받아 가는 사람이 조연출에서 제작자인 앤서니킴(김명민 )으로 바뀐 것뿐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시작된 이 드라마에 대한 드라마가 겨냥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두 드라마간의 보다 섬세한 대조는 이 질문에 조금이나마 답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

<그사세>가 연출자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였다면 <드라마의 제왕>은 제작자, 혹은 제작 자체에 무게를 둔 모습을 보여줬다. 초점화된 대상이 다르기에 이야기를 추동하는 요소도 다르다. <그사세>의 드라마는 작품으로 취급된다. 연출자는 드라마에 자신의 삶을 투영하고, 제작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드라마 제작은 일종의 구도(求道)나 다름없다. 따라서 시청률과 같은 세속적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아직까지 드라마는 작품으로 대우되고 있다.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사세>의 겉과 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은 드라마를 작품으로 남기고자 하는 소망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반면 <드라마의 제왕>에서 드라마는 철저히 자본과 동일시된다. PPL을 강요하는 제작자의 뜻에 따라 결국 대본이 수정되는 장면은 여기서의 드라마는 더 이상 작품이 아닌 상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직접 테이프까지 운반하는 제작자 밑에서 곧이곧대로 찍기만 하는 연출자의 입지는 좁다. 기실 <드라마의 제왕>은 첫 신부터 드라마가 낳는 황금알에 대해 불편할 정도로 조명을 비춘다. 드라마 제작의 신화적 존재인 앤서니킴의 강연은 이라는 단어로 가득 채워진다. ‘의 논리는 각종 통계에서 비롯된 확률로 뒷받침되고 있고, 여기에 학생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낸다.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논리의 강연은 어색한 학생들의 열광과 만나며 '이것이 혹시 웃음을 위한 장치일까'라는 의심을 부른다. 그러나 이 첫 신에서 보이는 일련의 허술함은 어느 정도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의 제왕>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드라마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이기 때문이다. 이를 단언할 수 있는 건 앤서니킴의 몰락에 이은 보조작가 이고은과의 결합을 통한 재기가 이 드라마의 주요한 서사라는 걸 손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 속에서 앤서니킴이 가진 드라마에 대한 생각은 필연적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부터 드라마가 정말 상품으로 느껴져선 곤란한 것이고, 첫 신은 의도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게 그려져야 할 운명에 처해진다.

결과적으로 <그사세><드라마의 제왕>작품으로서의 드라마라는 같은 과녁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 두 드라마는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드라마의 제왕>에 비해 <그사세>가 리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히 제작진이 찍은 제작에 관한 이야기라서가 아니다. <그사세>가 추구하는 바가 <드라마의 제왕>보다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이라는 차라리 판타지에 가까운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졌을 때 시청자를 공감시킬 수 있다. 반면 <드라마의 제왕><그사세>보다 명확하게 주제의식을 취하고 있다. ‘상품으로 전락해가는 드라마를 건져 올리려는 노력은 명료한 만큼이나 현실적인 주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드라마의 제왕>이 내린 선택은 <그사세>의 반대에 가깝다. 만화적인 캐릭터들은 현실을 훨씬 더 굴절시키며 주제를 강화하는데 동원되고 있다. 첫 신의 허술함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때 이러한 양상은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끝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의도적 비현실성이 어중간한 수준에 머문다는 점이다. 택배기사의 죽음이나 회장과 상무의 배신이 드라마에 무게감을 더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무게감은 경쾌하게 스텝을 내디뎌야 하는 만화적인 캐릭터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것은 비현실적 캐릭터들로 현실적인 주제를 담아내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곤란이다. 앤서니킴과 이고은의 진지함이 때때로 실소를 머금게 하는 건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아예 만화적이거나 확실하게 진지한 편이 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드라마의 제왕>은 그 중간이라는 위태로운 레일에 올라섰다. 남은 레일을 어떻게 달리는가가 이 드라마에 대한 드라마가 좋은 '상품이자 작품'일지 혹은 나쁜 '상품이자 작품'일지를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글루스 가든 -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덧글

  • ㄱㄱㅇ 2013/01/05 12:03 # 삭제 답글

    매일 매일 한 편의 글쓰기!!
    이제 글 안 쓰시나요....? 'ㅁ'
  • rus in urbe 2013/01/09 02:08 #

    절필!
  • rus in urbe 2013/01/09 02:09 #

    은 아니고.. 백수가 연말연시에 이상하게 바빠서 짬이 안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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